공개된 합의 내용도 욕먹을 것 투성이였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다 공개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피해 할머니들이 입장을 100% 반영한 합의가 최고의 합의인 건 맞고 개인적으로도 재협상을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 시점에 그게 가능했다면 예전에 됐을 것이다. 이미 서방 국가들 및 베트남 등 중국의 주변국들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는 합의를 했고 일본 스스로도 어느 정도 서방이 정한 선을 넘기지는 않는 범위 내에서 움직이고 있는데(미국에 대한 철저한 충성, 명목상 민주주의 및 세속주의 유지, 독일식 보통국가화 등) 한국이 혼자서 이걸 깨고 더한 요구를 할 수 있느냐, 그리스의 요구를 칼같이 잘라버린 독일의 선례를 보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하다못해 중국조차도 100%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지 못하는 판이다.
즉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해결은 해야 겠고, 그렇다고 이쪽 입장을 일본에 강요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럼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서방국가들이 합의한 선 내에서 받아낼 거 확실하게 받아내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있는 것도 부정하는 일본이 괘씸한 건 맞다. 하지만 저 난리를 치고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건 서방 국가들 간에 '그 정도는 용납이 가능하다' 는 합의가 이미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일본에 일방적인 합의를 관철시키려면 방법은 딱 하나. 한국이 직접 초강대국이 되어 일본을 굴복시키는 것 뿐이다. 이게 가능할 리가 있나? 게다가 한국은 그 당시 미국의 눈밖에 나고(지금도 다를 건 없지만) 중국은 뒤통수를 치려고 준비하고, 사실상 고립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 상황에서 일본까지 적으로 돌리면 한국은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면합의는 이런 상황에서 어쨌건 과거사 청산은 해야 겠고, 한국은 을인 입장에서 이뤄진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 잘했다는 게 아니다.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의 어설픈 친중외교가 협상을 더 불리하게 만든 건 사실이니만큼 까여도 싸지만, 설사 제대로 외교를 했다고 쳐도 여기서 크게 개선된 결과물을 가져왔을 가능성은 낮다.
p.s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자면 바로 '감정에 충실하다' 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니만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국력과 현 상황으로 볼 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수준의 '이성' 은 갖고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은 동북아시아 내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주변 5개국에는 들어가지만, 그 중 현실적으로 가장 약한 국가다. 그리고 그냥 상대적으로 약하기만 하면 좋지만 서쪽과 동쪽에 위치한 대국들이 한판 붙기 위해 이미 준비가 끝난 곳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립을 최대한 피하고 어떻게든 자국의 역량+@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데, 지나친 친중외교로 이미 미국조차 반쯤 등돌린 상황에서(물론 2015년과 달리 지금은 트럼프 체제 하 미국의 고립주의 성향이 초래한 책임도 없지는 않다) 한국이 자국의 역량 이상을 확보하자면 똑같이 자립하기가 어려운 국가와 손잡고 또 다른 세력권을 만드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해결책인데, 이 상황에서 일본 말고 다른 대안이 있나 싶다.




덧글
그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도 위안부 협상을 뒤집어엎지는 못할 겁니다. 사실상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체결된 협약이라 한국에 운신의 폭은 거의 없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