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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멸망이 북한에 준 교훈

동독은 왜 망했을까? 물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분단국가이긴 했지만 남베트남과 달리 엘리트들이 답 없이 썩지는 않았고, 김정은처럼 자기 권력 유지에 미쳐 사람을 마구 죽이는 인간말종도 없었으며,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1980년대 들어 다소 내려가긴 했으나 동시대 공산권 국가들만큼 극심하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개혁개방에 나서도 당장 혼란이 좀 있겠지만 그것 말고는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은 없는 건 물론 친서방 모드로 전환한 뒤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갈 수도 있는 국가였다. 슈타지의 행보를 보면 알겠지만 동시대 구공산권 정보기관들에 비하면 '상대적'이긴 해도 인간적이었다. 하다못해 폴란드나 체코에 비해서도 사정이 훨씬 나았다는 점은 절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동독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국민들의 선택으로 멸망했다. 왜일까?

우선 체코나 폴란드, 소련 등은 자신들의 국가를 포기해도 받아줄 나라가 없었다. 망한들 그저 망하고 끝이며, 일부 엘리트들이 난민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지는 모르나 온갖 경멸에 시달릴 것이고(시리아 난민이 어떤 대우를 받더라) 나머지는 망한 나라의 국적 없는 국민으로 아무 보호 없이 내몰릴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은 공산주의 체제는 버리더라도 국가 자체는 절대 버릴 수 없었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국가를 힘들더라도 개방 이후 선진국으로 이끌어가야만 했다. 물론 해외로 나간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의 존재가 경제성장에 타격을 주고 정치성향을 극도로 보수화시켰을지언정 국가 자체의 존속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대만은 그 경제 규모로 보건대 중국을 받아줄 수 없는 국가였으므로 사실상 중국은 분단국가가 아니라 단일국가라 봐도 되고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동유럽보다 더 극심한 혼란과 빈곤에 시달려야 했지만(러시아는 옐친의 온갖 아마추어 같은 정책도 한몫함) 역시 국가를 버릴 수 없었다. 러시아는 국민들의 선택으로, 중국은 공산당 스스로의 내부 결단으로 개혁개방을 했고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를 이어가는 중이다.

반면 동독은 자신들의 국가를 포기했을 때 받아줄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국가가 있었다. 바로 서독이다. 서독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지지율은 30% 정도에 불과했으나 1990년 통일 반대 시위에 고작 1만 명이 모이고 그들 대부분이 극우, 극좌, 무정부주의 등 극단주의자였던 점에서 보듯이 이 '지지율' 은 적극 찬성율이었을 뿐 대부분의 서독 주민들은 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동독 주민들과의 통일이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동독을 흡수하는 데 서독인들의 반대가 없었기 때문에 동독 주민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국가를 포기할 수 있었고, 개혁개방 과정에서의 희생을 통해 소득 2만 달러 정도의 국가로 거듭나느니 서독과 한나라가 되어 3.5~4만 달러의 국가가 되는 게 낫다는 것이 동독 주민들의 판단이었다. 물론 심각한 환상에 기인한 판단이긴 했지만 설사 사실을 다 알았더라도 달라졌을 가능성은 없다. 어쨌건 결과적으로 보면 현재의 구 동독이 다른 공산권 국가들보다 사정이 나은 건 맞으니까. 멸망한 국가와 그 국가를 위해 인생을 바쳤던 사람들(일부 반인륜 범죄자 제외)만 불쌍해진 셈이다.

이는 북한(정확히는 김정은 체제)이 왜 남한을 멸망시켜야 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물론 남한의 경제 상황은 서독에 비해 훨씬 열악하고 벌써부터 성장동력이 하강 추세를 타고 있지만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처럼 끝장난 국가는 아니며, 최소한 이탈리아처럼 흔들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재도약을 준비하는 국가에 가깝다, 그리고 북한은 동독보다 더 답이 없기에 메리트는 더 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한 사람들의 통일반대론이 커지고 있긴 하고 서독에 비해서도 반대 여론이 상당한 편이나 통일에 대한 찬성론도 만만찮으며 민족 개념을 벗어난 사람들조차 인구 문제나 국가 스케일 등(물론 있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나, 최소한 성공할 기회는 가질 수 있으므로)을 근거로 찬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북한 입장에서는 세대교체를 통해 남북 분단이 영구화되는 게 그나마 나았을 텐데 남한이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20대, 30대는 통일 반대론의 비중이 높지만 그것도 사회 혼란기의 최대 피해자라는 이유가 크고, 다음 세대의 경우 사회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질 공산이 크다. 당장 여성에 대한 태도만 봐도 사실상 동등한 입장으로 생각하고 모솔에 대해서도 별 감정이 없는 현 10대와 여성들에게 어쨌건 고개를 숙이고 솔로를 좋게 보지 않는 20~30대의 인식이 크게 다르다), 내부적으로도 이 문제에 얽힌 게 너무 많아서 지금 와서 통일을 정식으로 포기할 수도 없다. 결국 북한 체제가 살기 위한 해결 방안은 단 하나. 태영호가 말했듯이 남한을 말살하는 것이 된다.

지금 북한의 태도는 이런 점에서 봐야 한다. 북한이라고 미국과 핵전쟁을 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한을 멸망시키려면 우선 미국부터 떼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미국이 자국의 도시 한두개와 북한 전체를 교환하는 게 손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남한의 군사력을 상대로 정면대결은 무리이므로 역시 핵전력을 대량 생산하여 남한의 재래식 군대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핵개발을 멈출 이유는 없다. 그대로 가면 결국 북한 역시 동독이 될 것이고, 남한이 아예 망하지 않는 이상 통일을 피할 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독 지배층은 그다지 반인륜 범죄와 크게 연관되지 않았음에도 처벌받은 이들이 많은데, 북한은? 아마 살아남을 사람 자체가 별로 없을 것이다.

즉 남북관계는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그 시점에 생존의 싸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라는 '국가' 를 멸망시키고 싶지 않다면 남한이 망해야 한다. 반대로 남한이 망하고 싶지 않다면 북한을 멸망시켜야 한다. 아니면 분단체제 자체를 강제로 유지시키고 북한을 사실상 좀비 국가로 만들 외부 세력의 개입을 용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남한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덧글

  • K I T V S 2017/09/22 08:28 #

    북한은 열받지만 엄청 오래존속될거같습니다... 그냥 기분이 그래요....
  • 레이오트 2017/09/22 08:40 #

    존속도 모자라 2050년대에는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하고 남한을 침공할지도 모릅니다.
  • 레이오트 2017/09/22 23:56 #

    솔직히 왜 이딴 나라와 통일해야하나 싶어요. 애시당초 통일 논의라는게 당시 남한의 독재정권, 북한의 (백두김씨를 숭배하는)주체교 정교일치 절대군주정을 공고히하는데 쓰인데다가 유럽만봐도 같은 언어를 쓰는 민족인데도 서로 다른 나라 세워 잘 먹고 잘 살고있잖아요?
  • 루루카 2017/09/22 10:21 #

    그놈의 민족 타령...

    솔직히 단일민족이라는 주장도 그다지 공감할 수 없지만요.
    오랜 세월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온 지역이 단일민족이요? 그냥 웃음만 나오죠.

    통일/민족에 대한 집착 좀 버리고 그냥 각자 갈길을 가야 할텐데...
  • 에이알 2017/09/22 10:57 #

    솔직히 말하자면 배가 불렀다고 밖에 볼 수가 없음. IMF 아니 2008년 금융위기급 경제재앙으로 타격을 받아도 그 소리 나올련지 모르겠음. 가뜩이나 지금 한국 경제는 위태위태하게 어찌 굴러가는 판인데.
  • 레이오트 2017/09/22 11:22 #

    루루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나온지 100년 남짓 된 최신의 개념인데 그게 무슨 수천년간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마냥 떠받드니까 이런거죠.

    에이알// 통일 시나리오들을 보면 정도 차이가 있지 구 북한인의 남한으로의 대규모 엑소더스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있지요.
  • 전두환회고록 온라인 2017/09/22 10:15 #

    미군주둔이 봉건적인 3대 세습체제를 합리화시켜 주는 상황입니다.
    미군이 철수하면 신라김씨 세습체제는 곧 무너질 거라 봅니다.
  • 루루카 2017/09/22 10:17 #

    옛말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거라 했습니다.

    미군 철수가 해답이 아닌 현 시국에서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면,
    본인이 철수해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군이 없는 나라도 많으니, 그쪽을 알아보시길.
  • 전두환회고록 온라인 2017/09/22 12:33 #

    이땅의 주인은 한민족이죠.
    미군이 떠나는 게 순리가 아닐까요?
  • 킹오파 2017/09/22 13:03 #

    그거 일본에 요청해.
    미국은 한국 방어하기 싫어해.
    일본 가서 일본인들에게 계속 얘기하라고...

    내가 이래서 전후 협상때 미국이 일본과 강화 했어야 했다고 하는 거다.
  • 전두환회고록 온라인 2017/09/22 13:31 #

    일본에 요구할 것은 김대중협정을 개정해서 훼손된 독도 영유권을 회복하는 일.
  • 킹오파 2017/09/22 17:50 #

    저 넘 솔까역사인가? 왜 여기서 미군 철수하라고 얘기하냐? 일본 가서 주한 미군 철수 외치라고...
  • Dementia Precox 2017/09/22 10:26 #

    그럼 카다피나 차우셰스쿠 꼴이 나지 않을려면 모든 인민을 미리 처형해야 되겠군요.

    대한민국의 적화 시도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체제 수명을 단축하는 무리한 솔루션일뿐이죠.
  • 킹오파 2017/09/22 12:49 #

    남한 스스로 북한과 남한은 다른 나라이다. 라고 선언하고 니네가 우리를 침략하면 우리는 너희를 멸망 시킬 뿐이다. "너희는 병합의 대상이 아니요. 니들이 알아서 먹고 살아라" 라고 대놓고 천명하고 아무 지원도 안하고 남남으로 살아야 함.
    북한이 우리를 노린다면 미국, 일본과 힘을 합쳐 막아야 함.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같은 독일어를 쓰지만 남남이잖아요.
  • KittyHawk 2017/09/22 22:20 #

    그건 둘 다 전쟁 패배하면서 치른 대가의 성격도 강한지라...
  • deokbusin 2017/09/24 16:38 #

    게다가 나치독일이 오스트리아인들을 제대로 동등하게 대우했다면 패전 후에도 안슐루스는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꽤 되었죠.

    안 그래도 독일인들의 단일 국가를 만들자는 운동은 19세기 내내 독일어권에서 주도적 입지를 가지고 있었고, 2차대전후 독-오 분할을 영속화하는 현 제체에서도 오스트리아 내부에서는 독일과의 보다 견고한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튀어나오는 판이니까요.
  • 피그말리온 2017/09/22 22:38 #

    남한 입장에서도 북한이라는 기회를 버릴 수는 없겠죠. 문제는 장군이 싸우고 싶어도 병사들이 싸우기 원치않는 상황이라는거지...다만 끝까지 붙잡고는 갈겁니다. 안보문제에서는 항상 그랬어요. 당장 그 작은 군가산점 문제조차 10년 넘게 미적거리며 누가 희생하라는 말만 할 줄 아는 저능아들이 국회의원이니 대통령이니 하고 앉아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통일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런 문제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택도 없는 소리죠.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핵이 있어도 북한이 그걸 사용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겠죠. 북한은 그저 경제, 외교 그 무엇에서도 밀리는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그거 뿐일테고요. 결국 한중관계는 파탄 지경에 이르고, 거기에 한국에 진보정권이 들어선 행운 덕분에 한미관계도 좋지 못하게 되었죠. 북한이 바라는건 딱 거기까지라고 봅니다. 다만 그 체제가 고착되기 위해서는 아마 남한과 일본까지 모두 핵을 가져야할테니 갈 길이 멀지만...
  • 거대한 설인 2017/09/23 01:24 #

    동독 무너지기 직전의 시민 자유도 같은게 한국은 90년대 초중반과 비슷했다고 하던데...정부가 쫌 억압적이긴 했지만 국민의견도 잘들어주고 언론의 자유도 어느정도 있었다고 하네요...그런 나라가 자유주의 받아들여도 엄청난 혼란이 왔는데...북한은 ??ㅋㅋ
  • 제트 리 2017/09/23 21:55 #

    개인적으론 남북은 여러 모로 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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